20250526 불청객이 너무 많다
우리 집 내 방 장롱 뒤에 공간이 있다. 넓지는 않지만 있다. 숨바꼭질을 한다면 너무나 넓은 공간이고 어둡기에 술래는 무조건 들러야만 하는 곳. 카포에라 선생님 마스코치가 워크숍을 위해 한국에 왔는데 주변의 숙소가 모두 가득 차 곤란한 상황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두 분이 외부인을 집에 들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 비밀리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내 방 장롱 뒤 공간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언제 나갔다가 언제 들어오는지 모를 그의 우리 집 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장농 뒤를 들여다보았는데 (눈치 보지 않고 지내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쪽을 안 보고 지내던 날들이었다) 아예 다른 외국인이 있는 것. 속옷차림으로 샤워를 하러 화장실을 가는 길에 나와 마주쳤다. 익숙한 몸짓. 이 사람 하루 이틀 있던 것이 아니다. 처음엔 같이 놀랐다가 이내 나는 분노로, 그는 사정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놀라서 터져 나온 말이 한국말이어서 너 한국말하는 거냐, 하며 한국말로 화를 냈다. 어떻게 들어왔냐, 마스코치가 소개해줬다, 그게 말이 되냐 그도 여기 얹혀살고 있는데, 모른다 나는 여기 머무는 건 공짜라고 알고 있어서 들어온 거다, 어서 나가라, 며칠만 시간을 달라, 옥신각신 하다가 말싸움 장면은 끝이 났고 나는 잠시 계곡물을 따라 물놀이를 한다. 물살이 세다.
다시 방. 이제 내 장농 뒤를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다. 또 누가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내 방인데, 내가 살펴야지 어쩌겠어하며 가본다. 일기장이 놓여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번엔 대학생이다. 계속 읽어 내려간다. 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적혀있다. 투쟁의 전략과 매일의 감상이 적혀있다. 얘는 또 어디에 있는 거냐, 곧 발견한다. 두 명의 여학생이 이곳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소개로 왔단다. 내 방 장롱 뒤가 유명하단다. 걸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걸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기장을 보이는 곳에 두었단다. 이제는 조금 재미있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