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암기에 아주 취약하다. 기억은 잘 하는 편이다. 보편적인 현상이겠지만 감각이 하나씩 더해지면 기억하기 더 쉽다. 듣기만 한 것보다는 듣고 본 것이. 거기에 후각과 촉각이 더해진다면 더할나위 없이. 한때는 기록에 집착한 적도 있고, 무엇하나 버리지 못하는 못난 버릇을 간직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기억들이 가득차서 뇌가 터질까봐 걱정했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니 자연히 해결)
#2.
날이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영화속 장면이 있다. 5,6살때 봤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
고아인 주인공은 시장통에서 물건 하나를 훔치다 주인에게 걸린다. 네 부모 어디있냐고 다그치는 어른에게 주인공은 '잘못했어요 유치장보내주세요.' 라고 한다. 당황한 어른. 아이는 계속 호소한다. '유치장 보내주세요. 잘못했으니까 유치장 보내주세요. 유치장 가고싶단 말이에요.'
이 아이는 다른 또래들이 다 가는 '유치원'에 가고 싶었고 유치장과 유치원을 같은 곳으로 생각했다. 나쁜짓하면 유치장 간다는 말을 듣고 '유치원'에 가기 위해 일부러 물건을 훔쳤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장면. 주인공 아이의 미국입양이 결정되어 아이는 공항에서 하염없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아이를 감싸던 노래. 우리 엄마.
#3.
우리엄마 - 어른들은 몰라요OST(1988)
엄마가 다니던 시장 골목을/하루에도 몇번씩 오고 갔었네/모두가 떠나버린 놀이터에서/엄마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네/하늘의 별님의 되었나/우리 엄마는/반짝이는 저별이 엄마/엄마 같더라/아아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따스한 목소리로/나를 부르네
#4.
내가 살면서 만난 입양출신 한국인은 두명. 둘다 참 밝은 언니들이었고 둘다 나보다 5,6살이 많았다. 둘 다 한국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 중 한 언니는더블린에서 만났다. 내가 만들어준 떡볶이를 먹으며 물을 떡볶이의 세배는 마시느라 고생을 꽤 했다. 불뚝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처음먹어보는 한국음식이라고 정말 맛있다고 씩 웃었다. 양부모님들이 한국음식을 못 먹게 한다고 했다.
#5.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하게 되었던 홀트아동복지회 서신번역활동. 친부모로부터 입양아에게로, 입양아로부터 친부모에게로. 수만가지 사연이 있고 무엇 하나 비난 할 수 없었다. 한번은 감정이입이 얼마나 되던지 우느라 일을 못 하기도 했다. 담백한 문장 속에 보이는 치열한 극복의 흔적. 그것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6.
극복해야할 트라우마가 없다는 것이 고민인 적이 있다. 내가 만나온 사람들은,(아. 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구나) 내가 방향을 틀도록 만들어왔던 사람들은 '생각 없는 긍정론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삶을 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안에 없는 것들을 채워줄. 그러니까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7.
이 영화를 봤던 그 날 이후. 이런 날씨가 되면 꼭 이 영화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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