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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살린 지구

*2017년 빅이슈 기고글무심코 보낸 하루1.언제나 뻗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조카와 공을 차고 뛰어 놀다 땀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튼다. 적당히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따라 흐르며 땀을 씻어준다. 이 맛에 땀 흘리지, 하며 한껏 행복해지다 느껴지는 익숙한 기분. 흘린 땀을 보충한다며 벌컥벌컥 마셔대던 물이 몸 밖으로 나가겠다며 아우성친다. 순간, 고민한다. 어쩌지. 샤워를 잠시 중단하고 변기뚜껑을 열어 내 몸을 해방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에라 모르겠다. 서서 소변을 본다.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 배가 고프다. 돈가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조카와 함께 집 앞 식당을 찾는다.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먹으며..

gku 2026.10.25

벚꽃 비기닝?! 벌써닝?

*2016년 녹색연합 홈페이지에 올린 글때는 2016년 3월 27일. 친구에게 슬슬 벚꽃놀이 하러 가야 하지 않겠냐며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대공원으로 갈까? 여의도보다 1주일정도 늦게 가면 됐던거 같은데? 서울살면 서울대공원이지! (정작 서울대공원은 과천에 있는데..크크) 등등의 재미없는 개그를 나누며 낄낄거리다가, 문득, 지난 벚꽃놀이 사진을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패션이 2000년에 응답했네요.벚꽃이 만개한 서울대공원의 사진. 날짜는 잘 안보이지만 2000년 4월 15일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더랬죠. 1)생각보다 벚꽃이 늦게 피었네? 2)얼굴 가리고 포스팅 해야겠다..이렇게 두 가지..사진 찾아본 김에 과거를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보았습니다.96년 4월 26일, 윤중로입니다...

gku 2026.10.25

나를 이루는 것은 팔 할이 전기다

*2022년 빅이슈코리아 기고글환하게 켜진 두 개의 형광등, 연신 타닥 타닥 소리를 내는 노트북, 34도의 더위 속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에어컨, 방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선풍기, 집중도를 올리겠다며 휴대폰과 연결해놓은 블루투스 스피커. 오전 시간 한참을 일하다보면 배가 금세 출출해진다. 간단하게 먹어볼까?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냉장고 속의 열무김치를 꺼내 가위로 숭덩 숭덩 잘라 그릇에 넣고 국물도 쪼르르 따른다. 인덕션의 전기를 풀파워로 올리고 끓여낸 물에 면도 알맞게 익혀 찬물에 박박 씻어서는 그릇에 넣고 야무지게 먹는다. 먹었으니 커피를 내려마셔야지.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갈아낸 원두를 드립하고 한 잔. 캬 이게 바로 여름날의 재택근무지, 하다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 전기 없으면 못 사는 거 ..

gku 2026.10.25

곰을 위한 해피엔딩, 거의 다 왔어요!

*2024년 10월 빅이슈코리아 기고글죄 없는 곰의 감옥살이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습니다. 참 길기도 했고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수록 철창 속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내리쬐는 태양과 습한 기운을 피할 길 없이 철창 속에 갇혀 이번 여름을 보내고 있는, 사육곰 이야기입니다. 사육곰은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기르는 곰을 말합니다. 2024년 9월 현재 28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철창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육곰의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배설물이 쉽게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뜬장에서 개 사료, 음식물쓰레기 등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운이 좋은 농장을 만난 곰은 뜬장 대신 시멘트 바닥에서 지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육곰은 생후 10년이 지나면 철창을 나올 수 있습니다. ..

gku 2026.10.25

[2024 녹색순례 4일차] 순례단의 말말말 ; 그림을 듣는 날

*2024 녹색순례 기고글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걷는’ 순례단. 순례단의 꼬박 하루는 걸음과 말, 두 가지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하루 3만보 이상의 고된 걸음을 옮기며 주고받는 말은 참 다양합니다. 네 번째 날의 이야기는 ‘순례단의 말’을 중심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말 따라 걸음 따라 오늘도 함께 걸어볼까요?“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오늘은 상반기 순례단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돌아갈 자들은 남은 순례단의 안녕을 빌며 그간의 소회를 나누었어요. 한 활동가는 순례 내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개발하려는 세력들은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데, 그에 맞서 싸우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한 ..

gku 2026.10.25

20261025 날아가는 장갑과 새의 언어

미국. 콜로라도. 오빠는 직장을 그만뒀다. 부모님과 긴 논의 끝에 오빠는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는다. 현지에 집을 급하게 구하고 온 가족은 미국으로 향한다. 오빠만 두고 가족은 곧장 돌아올 예정이다.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 벽돌의 집. 넓고 깨끗하다. 이런 집은 비싸지 않겠나, 하는데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다. 집 곳곳을 둘러본다. 방 문을 열었는데 방이 아닌 외부다. 시선 끝에 회색 벽에 빨간 스테인드 글라스가 수없이 박힌 건물이 보인다. 건물은 정사각형이 겹쳐져 있는 모양이다. 이쁘다. 건축상을 받은 지역의 박물관이란다. 우리집에서 박물관 앞마당이 연결되어있네, 한참을 바라보다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구경을 마치고 거실에 왔는데 어느새 사람이 잔뜩 있다. 왜인지 오빠는 바..

night 2026.10.25

261010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대학생이다. 부산. 학교 가는 길. 원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는데, 어찌저찌한 사정으로 부산으로 이관하여 나도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학교 가는 길에 바다가 있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다. 잠시 감상하다 차를 탈 생각으로 바닷가를 거니는데, 인공으로 만든 파도가 원래 오는 파도와 반대편, 그러니까 땅에 설치되어있다. 풀장은 없고 높게 10미터 이상 떠오른 물이 땅으로 처박히는데, 그때 만들어지는 인공파도를 사람들은 즐기고 있다. 나는 인공파도와 백사장,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사이의 모래밭에 서서 인공파도를 지켜보다가 이내 깨닫는다. 저 물은 나에게 올 것이고, 내 발에는 물이 차오를 것이라고. 이 신발이 젖으면 하루 종일 매우 찝찝할 것이 분명했기에 차오르는 물을 피해 약간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

night 2026.10.10

가계부의 습격

- 앱을 같이 쓸 수 있대.넷이 하는 술집의 운영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식자재 관리, 청소, 손님 응대 등은 이제 어떻게든 익숙해져 갔지만 돈관리만큼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넷 중 두명씩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가게를 운영했기에, 내가 나오지 않는 날에 어떤 상황인지도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 일단 이 앱을 다운 받아봐. 같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는거야. 내가 로그인 해놨으니 내 아이디로 하면 돼. 넷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나와 남자 셋. A는 나의 연인, B는 A의 친구, C는... B가 '커플 사이에서 뭔지랄이냐'는 친구들의 성화에 데려온 친구. 나와 A는 중간에 헤어지면 어떡하냐는 B의 걱정에,- 야, 우리 벌써 만난지가 몇년인데, 안헤어져~ 헤어져도 친구 할게~ 가게는 책임지고 ..

day 2026.10.10

김치볶음밥

김치 볶음밥을 했다. 잘 익은 신김치를 가위로 잘게 자르고 파기름을 낸 프라이팬에 충분히 익혔다. 기숙사 담당인 날에는 학생들의 밥만 책임 지면 된다지만 오늘 야근인 교사 둘, 함께 작업중이던 통역사, 기숙사 학생 셋, 그리고 나까지 일곱명의 밥을 차렸다. 사실 난 볶음밥을 잘 한다. 맛있게 먹고 나면 나의 시간. 기숙사 소등시까지 자잘한 일을 하고,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이 섞인 업무 이야기를 하다보니 열시. 엇, 귀가한 교사의 톡이다. '내일 밥상모심 재료 준비 까먹었어요ㅠ' 기꺼이 불을 올리고 계란 12개와 감자 9개를 삶는다. 모두 준비를 마치니 11시. 이제야 잘 준비를 한다. 꽤...뿌듯하게 눕는다.효능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 이런 것도 괜찮지. 굉장한 쓸모가 아니더라도, 속으로 '나 아니면..

day 2026.04.24

해-탈

하루종일 서늘했다. 마지막 공연을 앞둬서일 수도, 어제 하루 앞당긴 회식이 부담스러워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신 탓에 잠을 설쳐서일 수도, 주말 사이 방치된 아이들이 월요일 도무지 집중하지 못해 내신경을 건드려서일 수도, 그냥 기압골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배우들은 언제나처럼 말 그대로 오장육부를 쏟아내며 오늘의 공연을 마친다. 오늘로 마지막인 나도 더 힘껏 손짓을 한다. '해-탈!'로 내 대사는 끝나고, 언제나 숨고 싶은 마음을 숨기는 커튼콜을 마치고, 비에 젖은 명동은 더 추워졌을 텐데 하며 여미고 두터운 나무문을 열었는데 웬걸.후덥지근한 공기가 새삼스럽다. 삼매경에서 빠져나오는 거리, 여운이 길게 따라온다.

day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