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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볶음밥

김치 볶음밥을 했다. 잘 익은 신김치를 가위로 잘게 자르고 파기름을 낸 프라이팬에 충분히 익혔다. 기숙사 담당인 날에는 학생들의 밥만 책임 지면 된다지만 오늘 야근인 교사 둘, 함께 작업중이던 통역사, 기숙사 학생 셋, 그리고 나까지 일곱명의 밥을 차렸다. 사실 난 볶음밥을 잘 한다. 맛있게 먹고 나면 나의 시간. 기숙사 소등시까지 자잘한 일을 하고, 오가는 사람들과 일상이 섞인 업무 이야기를 하다보니 열시. 엇, 귀가한 교사의 톡이다. '내일 밥상모심 재료 준비 까먹었어요ㅠ' 기꺼이 불을 올리고 계란 12개와 감자 9개를 삶는다. 모두 준비를 마치니 11시. 이제야 잘 준비를 한다. 꽤...뿌듯하게 눕는다.효능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 이런 것도 괜찮지. 굉장한 쓸모가 아니더라도, 속으로 '나 아니면..

day 2026.04.24

해-탈

하루종일 서늘했다. 마지막 공연을 앞둬서일 수도, 어제 하루 앞당긴 회식이 부담스러워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신 탓에 잠을 설쳐서일 수도, 주말 사이 방치된 아이들이 월요일 도무지 집중하지 못해 내신경을 건드려서일 수도, 그냥 기압골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배우들은 언제나처럼 말 그대로 오장육부를 쏟아내며 오늘의 공연을 마친다. 오늘로 마지막인 나도 더 힘껏 손짓을 한다. '해-탈!'로 내 대사는 끝나고, 언제나 숨고 싶은 마음을 숨기는 커튼콜을 마치고, 비에 젖은 명동은 더 추워졌을 텐데 하며 여미고 두터운 나무문을 열었는데 웬걸.후덥지근한 공기가 새삼스럽다. 삼매경에서 빠져나오는 거리, 여운이 길게 따라온다.

day 2026.03.31

카니발

전람회와 패닉을 좋아했던 6학년의 나는 자연스레 카니발을 좋아하는 중2가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솔직했고 세련되어 중2병의 나를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당시 반에서 나의 위치는 찐따와 배경 사이, 딱히 관심받지도 미움받지도 않던 무존재.나를 ‘뾰족궁둥이’라 부르며 친한 척하던 1그룹의 학우가 있었다. (친구도 아니고, 뭐라 불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는 내가 듣는 음악을 유심히 살피더니 어느 날 말했다.“너 음악 좋아하나 봐. 나 이거 빌려줘.”1그룹의 학우가 나를 찾는다니! 반갑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무존재 그룹의 나는 기꺼이 카니발의 테이프를 빌려주게 된다.“내가 좋아하는 거야. 1주일만 듣고 돌려줘😁”순진했다. 그는 테이프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미 전적이 있었다. 내가 빌려보던 소설책..

day 2026.02.03

겨울 걷기

"살찐 돼지들과 거짓 놀음 밑에 단지 무릎 꿇어야했던피 흘리며 떠난 잊혀져 간 모두 다시 돌아와 이제 이 하늘을 가르리"어제 오늘 친구와 중학교에서 교복을 나눠주는 알바를 했다. 머리쓰는 일만 하던 우리에게 이 알바는 일견 쉼이기도, 비효율을 체험하는 답답함이기도 했다. 나는 쉼이었다 😃이틀 일하며 나눈 이야기, 이것도 일이라며 마친 후 진행한 둘만의 뒤풀이까지. 어떤 의식이라도 치루는 듯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는 어제 오늘 귀를 맴도는 패닉 전앨범을 틀고 대차게 걸었다. 구파발에서 불광까지. 통일로 걷기. 패닉의 ufo가 나왔다. 대학 신입 ot를 가서 처음 얼큰히 취하는 자리, 예상치 못하게 한 명씩 노래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 당시의 유행가를 부르는 동기들. 내 순서가 다가오고 나는 생각나는..

day 2026.01.30

20260122 빙하와 파전

오랜 친구와 아침 일찍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합정역 근처를 지나면서 '빙하'가 지금부터 열면 진짜 편할 텐데~ 하며 포은로에 들어선다. 빙하가 가까워지니 보이는 긴 줄. 사람들이 빙하에 들어서기 위해 줄을 길게 섰다. 사장님들은 매우 피곤해 보였지만 신나 보이기도 했다. 감자튀김과 파전을 무한대로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왠지 감자튀김과 파전 조합으로 바이럴을 탄 듯하다. 인사를 하니 반겨준다. 바빠 보이니 이따 저녁에 올게, 하니 이따가는 더 힘들 거라고 지금 이 음식 하나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한 잔 하란다. 친구 가게의 흥행에 반갑기도 하면서 피곤해 보이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파전과 감자튀김 접시를 든 나와 친구는 주변의 한 술집 다락방 자리에 들어가 한 잔 하기 시작하며 꿈을 깬다.

night 2026.01.22

20260112 검정 기관차 바닥의 검정 레고

안국역을 걷다가 어느 식당 앞에 설치물이 있는 것을 목격한다. 가보니 기차 한 칸이 놓여있다. 진짜 기차의 한 칸을 떼어놓은 것인지, 모형인지는 분명치 않다. 사람들이 줄지어 기차를 통과하는 놀이를 하고 있길래 영문도 모른 채 함께 한다. 객실 바닥에는 레고가 놓여있다. 다양한 색의 레고, 신발을 신고 걸어서 아프지 않다.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걸어 다니므로 레고가 흩어진다. 원래 크기보다 폭이며 길이가 현저히 작아서 레고는 자꾸 밖으로 튀어나간다. 걷다가 나오니 여기 지나다니시면 안 된다고 타박한다. 식당 관계자인 듯한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기도 하고 그냥 무시한다. 다음날. 같은 공간을 다시 지나다 이번엔 베이글집 앞이다. 어제와는 달리 검은색 열차고, 옛날 증기기관차를 구현해놓은 듯하다...

night 2026.01.12

찌꺼기 걷어내기

어제는 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녹색의 2026년 첫 근무일. 매년 연말 주어지는 10일의 방학 덕에 퇴직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어제는 후폭풍을 그대로 맞았다. 이놈의 슬랙을 없애버려야지.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주말이 지나면 직장 메일 계정은 사라진다. 전 직장을 생각하며 질질 짜는 것이 흡사 오래된 전 연인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생각이 다르다. 연인은 너무 좁은 개념. 이건 고향을 떠나온 거다. 오늘 아침모임에 들어가기 전 SNS의 알고리즘이 들려준 Xavier Rudd-Home이 내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매일같이 만나던 이들, 함께 쌓아가던 웃음과 울음, 투쟁과 실패와 성공의 기쁨, 피로와 해소. 층층이 더해온 매일이 이제는 없다는 것. 나는 그 매일을 떠났다. 일상의 반복 사이 마음껏 변..

day 2026.01.06

20260106 자극을 멈추지 마

퇴근한 아빠가 집에 오셨다. 오래된 구옥이다. 엄마는 배고픈 아빠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빠의 복장은 출근할 때 입은 그대로, 짙은 회색 정장. 배고픔을 알아주지 않자 화가 난 아빠는 그냥 누웠다. 그렇게 잠깐의 죽음이 찾아왔다. 아빠는 이런 죽음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다. 곡기를 끊으면 바로 죽는다는 것을 안다. 죽음을 선택당한 건지 선택 한 건지 불분명하다. 나는 급하게 엄마에게 말을 전하고 식사를 준비시킨다. 아빠는 정장을 입은 채로 깨어나 식사를 하시고 우리에게 왔다. 집에는 대가족이 함께 산다. 아빠를 죽음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계속 자극을 드려야 한다. 말을 건다. 아빠는 말을 이어간다. 엄마에게 화가 났던 것은 정말 화가 났다기보다 죽음을 앞둔 자의 감정 토해내기? 의례 같은 거다. 우..

night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