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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여러가지 이야기

1. 진라면을 번들로 구매하기 위해 경쟁 2. 외국인들이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영어를 쓰는 남자들이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왔다고 한다. 시차 적응도 안되었고 하여 밤새 연습을 하더니 5시쯤 나를 불러 주변에 연 식당이 있는지 묻는다.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혀가 굳어 발음이 뭉개진다. 겨우겨우 그런 식당이 잘 없는데 김밥천국이라는 곳을 잘 찾아보라고. 아마 동네마다 있으니 여기도 있을 거라고 한다. 부엌의 엄마가 나를 따로 부른다. 저들이 먹고 싶은 게 뭐니, 뭐 고기랑 그런 거 먹고 싶나 봐. 재료는 다 있으니 얼마 정도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엄마가 요리해준다고 해. 그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그들은 훨씬 좋다며 신나 한다. 3. 취재차 왁싱숍에 가게 되었다. 카메라로 현장을 담는 ..

night 2020.07.27

20200510 가시 빼기

호텔방이었다. 고급스러운 곳. 엑스트라 알바를 하러 가서 손을 바닥에 짚었는데 그때 손가락에 작은 플라스틱 가시가 잔뜩 박혔다. 그냥 따끔해서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다음날 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손톱밑 가시들을 하나씩 빼기 시작한다. 갈색과 살구색의 가시들. 눈 앞에 한가득이다. 아파서 포기하고싶지만 꾹 참고 가시를 뺀다. 빼다 지쳐 잠시 쉰다. 엄마가 온다. 뭐하고 있니, 가시를 빼고 있어 너무 아파, 그랬구나 그래도 마저 빼야지. 엥 엄지손톱밑에 파란색 크레파스 머리 부분이 보인다. 크레파스는 또 언제 박힌거야.. 아랫쪽부터 힘주어 올린다. 굉장한 고통과 빠지는 쾌감이 함께한다. 크레파스 띠종이가 안에서 피와 함께 굳었는지 나오지않았다. 종이를 빼내는 것은 더 힘들었다. 나온 종이는 파란색이었었지만..

night 2020.05.10

몇 번의 황혼, 몇 번의 아침, 몇 번의 만남

인생을 좀 살아보니까 50년이면 50과 365를 곱한 시간의 길이를 살아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몇 번의 황혼, 몇 번의 아침, 몇 번의 만남, 이런 것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너무 오래 살아 기억이 다 안 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기억력 문제가 아닌 거예요. 기억력 문제라면 이십년 전, 삼십년 전 할머니의 손길 같은 것이 기억 날 리가 없죠. 그냥 다른 기억들이 필요 없었던 거예요. 달리 말하면 몇 개의 날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해도 될 만큼 아름다웠다는 뜻인 거죠. (...) 그 몇 개의 사실과 몇 개의 순간들이 결국 내 인생을 결정하는 거예요. 내일 모레 육십인데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제겐 앞으로 20년의 생이 남은 게 아니에요. 단지 몇 번의 아침을 맞을 거예요. 몇 번의..

and 2020.03.22

역시

‘역시 너야’ 라는 말을 들을 때를 생각한다. 1.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2. 지독한 편견 그대로 행할 때 3.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상대를 꿰뚫어본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니 다시 써본다. ‘역시 ~야’ 라는 말을 쓸 때를 생각한다. 1. 대상의 행위가 내마음에 쏙 들 때 2. 대상의 행위가 내 생각과 맞아떨어질 때 3. 대상의 행위가 내 기대와 맞을 때 보통의 관계에서 완벽히 일치된 소통은 불가능 하기에 결국 내 모든 것은 내 마음의 문제이고 그렇다면 라는 말은 무척 오만한 말이 된다. 비슷한 말로는 가 있다. 자신의 편견을 입밖으로 내어놓는데 어떠한 주저함이 없고 당당하다. 조심해야 할 말 추가.

day 2020.03.20

와인과 기후변화

2016. 11. 녹색연합 소식지 녹색희망 기고글 “친구 삼촌이 와이너리를 하신대. 한번 같이 놀러 가보지 않을래?”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술 마실 틈과 술 마실 에너지는 있는 나에게 친구의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와인은 맛도 모르고 마시는 와알못(와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와이너리라니. 포도향에 취해 끝없는 포도밭을 걸어다니고, 포도를 함께 수확하고, 오크통에 있는 와인을 들여다보고, 함께 포도알을 발로 밟으며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프랑스로 갔다. 도착해보니 와인 제조와 관련한 모든 일정이 끝난 후라 민망했다는 후문. 좋은 음식은 여행하지 않는다. 파리로부터 남서쪽으로 304km떨어진 Anetz는 Loire강이 유유히 흐르는 평화로운 동네다..

day 2020.03.18

20200225 나눔산수

꿈에서 이상한 개념의 산수를 만났다. 5-3=8이 일반적인 셈이라면 나눔산수는 (5+ㅁ) - (3+ㅂ) = 8 인 거다. 앞에는 물건이나 음식이고 뒤의 ㅁ,ㅂ은 사람이나 동물 숫자이다. 식을 완성해야 되는 건 물론, 어떤 물건을 어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지를 서술해야 한다. 예) (5+10)-(3+4)=8 해석) 15개의 사과를 배고픈 친구들 7명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8개가 남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데 어떤 숫자가 오든 어떤 음식이 오든 어떤 사람이 오든 상관이 없고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 초등학교에서 새롭게 실시하고 있는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night 2020.03.13

20200313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 갑자기 눈을 뜬다. 밖에 소리가 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오빠와 친구 몇명이 있다. 투자를 받았는데 취소가 됐다니 어쩌니 하면서 앓는 소리를 주고받는다. 음 오빠는 죽었는데? 이상하다. 오빠한테 가서 가만 살펴보니 그냥 태연한 얼굴. 왜 여깄어? 하니 왜 여기 있으면 안돼? 한다. 모르는 거 같다. 날짜를 보니 과거다. 바로 그 날이다. 오빠가 죽던 날. 그날 오빠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기로 되어있다. 꿈에서 꿈인 걸 알면서 오빠를 만난 적이 종종 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은 없다. 아니 살아있을 때도 오빠의 얼굴을 한참동안 본 적이 없다. 이번엔 다르다. 한참을 본다. 반갑다. 오빠는 얘 왜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답한다. 친구들이랑 대화를 마치고 일을 하러 나간다고 한다. 마음이 급해진다...

night 2020.03.13

20200308 핀란드식 수학공부법

어느이유인지 대학생인 상황에서 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중고등학교때부터 수학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고 진도를 나가고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해 시험을 보고 그 채로 수능까지 보게 됐던 상황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극복이 되지 않았나보다. - 과외중 선생이 잠시 집에 다녀와야 된다며 10분만 쉬자고 한다. 나는 뭐 그러시라고, 덕분에 쉬겠네- 하면서 흔쾌히 선생을 보낸다. 30분이 지나도록 선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야 공부 안하니 좋지 ㅋㅋ 하며 그냥 저냥 기다리다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내옆에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흐의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요즘 유행하는 키트를 사용하는 거 같다. 그림이다. 원래 그림 프린트된 것이 아래 깔리고 그위에 얇게 코팅이 되어있..

night 2020.03.08

20190909 세상이 추모하는 죽음

1. ​ 며칠 전 이상한 낌새가 있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 지나가는 말투로 그의 어머니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모든 걸 체념하는 어머니의 말씀. 자고있는데 다른 친구의 연락이 온다. 'ㅇㅇ이 죽은거 알고 있냐'고, 하지만 그는 ㅇㅇ이를 모르지 않는가. 기사에서 봤다고 했다.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서 너무 슬프더라고. 그런데 너의 친한 친구지 않냐고. 물론 친한 친구지 그런데 기사에서 그 죽음을 다룬다고? TV와 신문에서는 연일 그의 생전 어록이라든지, 살아온 행적으로 카드뉴스를 만들어 내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삶에서 아주 짧았던 시간인 날씬했을때의 사진만을 자료로 쓴다. 덕분에 예쁘고 날씬한 그의 사진을 배경으로 그가 했던 말들이 (어디서 ..

night 201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