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20190909 세상이 추모하는 죽음

지삼이 2019. 9. 9. 10:19

1.


며칠 전 이상한 낌새가 있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 지나가는 말투로 그의 어머니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모든 걸 체념하는 어머니의 말씀.

자고있는데 다른 친구의 연락이 온다. 'ㅇㅇ이 죽은거 알고 있냐'고, 하지만 그는 ㅇㅇ이를 모르지 않는가. 기사에서 봤다고 했다.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서 너무 슬프더라고. 그런데 너의 친한 친구지 않냐고. 물론 친한 친구지 그런데 기사에서 그 죽음을 다룬다고?

TV와 신문에서는 연일 그의 생전 어록이라든지, 살아온 행적으로 카드뉴스를 만들어 내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삶에서 아주 짧았던 시간인 날씬했을때의 사진만을 자료로 쓴다. 덕분에 예쁘고 날씬한 그의 사진을 배경으로 그가 했던 말들이 (어디서 받아 적은 건 지는 모르겠지만) 떠다닌다. 사람들은 저렇게 예쁘고 귀감이 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며 자기 일처럼 가슴아파한다.,

반면 나는 도무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그의 생전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어디에서 장례식이 열리는가에 대한 정보는 아무 곳에도 없다. 내가 연락할 곳은 그의 핸드폰뿐인데 핸드폰은 꺼져있어 연락이 닿을 길이 없다. 죽은게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는 죽음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 모두는 그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는 말이 없다. 죽었기 때문인지 숨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2.

화면이 전환되어 서울의 우리집. 기후변화때문인지 한강이 내가 사는 곳까지 넓어졌다. 내가 사는 집은 한강 끝에 닿은 통유리창 집인데 이게 본의 아니게 조망권이 굉장히 좋아지는 바람에 집값이 많이 올라갔다. 원래 한강에 가까웠던 동네는 이미 물에 잠겼다. 우리집의 비밀은 통유리 창에 가까이 갔을 때 한강의 썩은 물이 확연히 보이고, 또 스멀스멀 냄새도 올라온다는 것. 나는 이사를 가고 싶지만 집값을 깎이기는 싫기 때문에 통창에서 비치는 풍경을 집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물결이 일고 햇살이 비출 때를 잘 잡아 찍으면 더러운 물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한강변 사진이 나온다. 얼른 찍고는 방문을 닫아버린다.

3.
오빠가 동네에 작은 영화관이 생겼다고 한다. 영화관의 정보를 주며 대신 가지고 있는 싸이 도토리를 넘겨주면 안되냐고 묻는다. 안한지 오래되서 로그인도 못해 난.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해줘. 전화를 해서 도토리를 일촌친구에게 넘겨주겠다고 한다. 1/10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고작 23개밖에 안되는데 그래도 넘기시겠냐, 묻는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어도 쓸일이 평생 없기 때문에 넘겨도 상관은 없는데 230개가 23개가 된다는 말에 멈칫,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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