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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아기가 집만 짓다가 가버렸다.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중에 와야 할 때 오겠지, 생각 한다. 수술을 받고 예정에 없던 휴직을 한 달동안 하게 되었다. 임신때보다 몸이 훨씬 가볍고 나아졌지만 외출은 삼가야 해서 집 안에서 머리만 활성화 시키고 있다. 마음이 점점 맑아지고 있다. 창문이 커서 다행이다. 경험이 많아지고, 경험에 따른 감정도 배워가는 중이다. 살아오면서 겪지 않았던 일들이 드문 드문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를 함께 할 짝이 생겼고 분명 남이었다가 가장 가까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다. 또 태어나면서부터 옆에 있던 형제의 죽음은.. 상대와의 추억은 인연이 끝이 날 때 그제야 생명을 얻는다. 30여년간 곱씹어 본 적 없는 그와의 추억이 떠올라 여전히 울컥한다. 때와 장소를..

day 2018.03.16

20180311 애벌레

승강장. 동료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 낯이 익은 여자 하나를 발견한다. 고등학교 동기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코레일 관광상품을 팔 던 것을 본적이 있다. 그 때 동료가 그 친구의 이름을 혼자 중얼 거린다. 학교 동기란다. 늦게 대학에 들어와서 자기랑 동기가 되었다고 하는 걸 보니 일 하다가 대학에 늦게 들어간 모양이다. 이렇게 둘이 동시에 아는 경우도 있냐며 신기해한다. ​지하철을 타고 저 멀리 남자 둘을 본다. 또 아는 애다. 워크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 또 동료의 대학 친구들이란다. 계속 놀라움의 연속. 그 친구들에게 나는 꼭 물어 볼 것이 있어 다가간다. 다행히 그 친구들도 나를 기억하고, 과학문제를 풀어야하니 꼭 연락 달라고 하고 헤어진다. 어딘가의 방 안. 작고 선명한 초록색의 애벌레 두 마..

night 2018.03.11

20180216 참새와의 우정

민족명절 설날 꿈은 참새와의 우정. 빅이슈를 보는데 참새와 대화를 하는 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사물과 동물에게 말을 걸고 대답을 기더리던 어린시절이 생각나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한다. 출근하며 지나가는 참새들에게 생각으로 아침인사를 건내는데 드디어! 한마리가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왔다! 일반 참새보다 두세배는 컸지만 참새다. 새는 좀 무섭지만 그래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내 품으로 안기는 새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 후로 오가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동네 이야기를 주로 했다. 떨어져있는 동안에도 대화하고 싶어 핸드폰을 얻어주었다. 제일 가벼운 걸로 구했다. 카톡으로도 대화하며 지냈다. 빅이슈 다음호가 발간이 되고, 참새와 대화하는 아이 이야기도 나오고 괜히 뿌듯했다. 나도 제보해야겠다..

night 2018.02.16

20180116 기사 없는 버스

​ 꿈에서의 일이다. 미아동에 농사지을때 ‘농’ 이라는 한자를 타이틀로 건 행사를 홍보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현수막을 길가에 걸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현수막 설치가 끝나기도 전에 버스가 왔다. 동행인은 버스를 잡고 있겠다며 먼저 탔고 나는 마음이 바빠져서 한쪽을 마저 묶으려는데 길이가 애매해서 안묶였다. 그때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가 내려 도와주셨고 나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기사님이 못탔다. 버스는 슬슬 출발하고 있었고 기사님은 같이 슬슬 달리면서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결국 기사님을 버려둔 채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운전 할 수 있는 사람 빨리 운전대 잡아요! 당신도 할 수 있잖아! 서로에게 일을 미루며 버스는 점점 빨라졌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겁..

night 2018.01.16

20180102 고등학생이 되는 꿈

​ 꿈에 전국가적인 전산오류로 인해 고등학교 2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2와 대3을 다시 다녀야 하는데 그 소식을 전해들은 모두는 고2과정을 선행(복습?) 학습을 하며 점수관리에 열심이었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내게 그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다 졸업했고 직장도 다니는건데.. 공부안해도 될거같은데ㅠ 나같은 사람을 위해 사회는 대입을 위한 줄세우기가 아닌 그때그때 시험의 결과로 차등적 이벤트를 진행했다. 수학과 과학시험이 있었고 나는 당연히 꼴찌였는데 시험이 끝나고 교실로 다시 오니 샤브샤브 대잔치가 벌어져있었고 2인1조로 상차림이 되어있었으며 내 자리의 샤브샤브 재료는 배추와 고기 찌꺼기뿐. 와 더럽고 치사하고 1등의 자리에는 거의 잔칫상이 벌어져있..

night 2018.01.02

알레그리아

기쁨은 슬픔을 없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견딜만 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내년에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다가 중간에 목이 막혔다. 겁이 났다. 삶은 무슨 일이든 벌어지는 법이니.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기쁜 일을 많이 만들고 기꺼이 기쁜 상황 속으로 들어가겠다. 언제나 힘들겠지만. 늘 그랬듯이. 2017년과 2018년의 경계는 너무 우습다만 그래도 한권의 스케줄러를 서랍속에 넣는 날은 기릴만 한 거 같다. ​ 그래서 열두시를 기다리며 사치스러운 혼술을 시작한다. ​

day 2017.12.31

오늘의 생각

일을 떠나니 일 뒤로 미뤄놓았던 생각이 밀려온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서로 교차하고 부딪치고 자기들끼리 싸운다. 오늘 통가리로국립공원을 가로지르며 역시나 생각들의 늪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마리 하나가 띵. ​ 요즘 친한 동생 하나가 자꾸 선을 넘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차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잘 지냈는데 지금 이야기 하면 좀 웃기지 않나? 그런데 얜 자꾸 선을 넘네, 요즘 조금 더 심해지네, 이러다 친구 정리하지 싶네, 이러던 차였다. 좋아하는 친구인데 어느 순간 내가 너무 못견디겠다 싶으면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2년이 된 그 언니와의 끊겨진 관계가 갑자기 떠올랐다. 와, 그랬네, 그사람도 그랬네. 서로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준 채로 친해져버린 관..

day 2017.11.30

내가 하늘이다, 라는 날씨

어찌 저찌 하여 뉴질랜드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타우포라는 지역에 와있다. 친구와 함께 왔다가 하룻밤이 지나 친구는 먼저 돌아가고 나 혼자 남아 내일 있을 트렉킹 투어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린다고 하지만 사실 한적한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걷다가 울먹거리는 아이를 보았다. 자기 키만한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겠다고 버튼을 힘차게 누른 후,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까치발을 하고 서 입을 가져가는 순간 힘이 풀려 계속 물을 마시지 못해서 결국 울음이 터진 것이다. ​ 물 마시고 싶어? 물어보니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세게 고개를 끄덕인다. 버튼을 눌러주고, 입을 아주 살짝 축이더니 신나서 엄마에게 뛰어갔다. 하늘은 맑고 맑다못해 해가 쨍했다. 이런 나라에서는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수일 수밖에 없겠다. 적도와 가까워서..

day 2017.11.29

20171005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기도를 하고 잤다. 원래 가족들과, 새롭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한명 한명 되네이며 한동안은 즐거운 일만 있게 해달라고, 그게 힘들면 적당한 힘듦만 있게 해달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잠들었다. 꿈에서 신과 대화를 했다. 작별인사도 못한 오빠가 하룻동안 세상에 오게 되었단다. 대신 하루 종일 교회에서 원래 하던 성가대며, 샬롬을 해야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 사람들은 오빠를 온전히 가족들과 있게 해주겠다며 음악봉사일은 걱정 말란다. 다 오빠인척 하며 한시간씩 돌아가면 되니까 문제 없단다. 너무 고마웠다. 가족 한 명당 한시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내가 첫번째였다. 우리가 만난 곳은 레스토랑. 주문을 하고 오빠가 앞에 앉았다, 가 잠이 깼다. 여섯시 반. 알람이 울리기까지 한시간 남았는데..꿈을 이어서 ..

night 2017.10.05

연극 레디-메이드인생

한 배우의 목에 화이트칼라가 채워진다. 그렇게 그 배우는 주인공 P가 된다. 화이트칼라는 이 배우의 목에서 저 배우의 옮겨간다. 남자 배우에서 여자 배우로, 키 큰 배우에서 작은 배우로, 극이 진행되며 사실 P는 누구라도 상관 없이 흘러간다. 의자였던 까만 상자는 카페의 테이블이 되고, 또 메뉴판이 되고, 이제 이것 또한 아무래도 상관 없다. 무심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치밀한 연출이다. 무엇을 보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니까. 표상을 걷어낸 곳에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자리잡고 있었다. 세상이 만들어냈지만 받아줄 정작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없다. 레디-메이드 인생들은 커져버린 머리와 빈약한 몸을 가진 채 도시 이 곳 저 곳을 헤맨다. 4년 내내 배우던 인문학을 머리와 가슴에 품은 채 취업시..

day 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