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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시간여행자

이상했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날들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센스있고 유쾌하고 싸울 일도 없고 내 감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차리는지, 완벽한 10여년의 결혼생활이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하나, 우리가 싸우고 있었다. 또 하나, 답답해하는 내 모습. 그래서 스치듯 방가에게 물었다. 너 돌아온거야? 당황하는 방가. 말을 얼버무리다가 그렇다고 답한다. 스무 번째란다. 알고보니 방가는 시간여행자였고 나와의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돌아와서 그 일을 일어나지 않게 방지 했던 것. 그래 좋다 그거야. 다 털어놓았지만 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나랑 살면 나는 모르는 채로 너랑 살겠지? 그런데 그 시간시간대마다 살고 있는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night 2017.09.06

와인 마시던 밤

방가와 충무로에서 만나 소주 데이트를 했다. 신나게 마시던 중 스팸 문자를 받았다. 집 앞 와인가게에서 5만원 이상 와인 구입시 3만원 상당의 와인잔을 준단다. 대차게 출발했다. 소화시킨다며 한시간을 걸었다. 5만원어치 와인을 사기 위해선 거짓말일지 모를 7만원-3만원 행사 와인을 두 병이나 사야한다. 샀다. 와인을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한다. 한 병 드리자. 전화를 했다. 당연히 재희와 새언니와 함께 있단다. 전화를 받고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란다. 아빠 집에 있으란다. 갔다. 정확히 십분 후 집앞에 아빠가 도착한다. 얼른 올라가란다. 지선이가 보자고 하다니 너무 좋단다. 와인만 드리고 집에 가려던 우리는 식탁에 마주앉아 아빠가 아끼던 와인을 함께 딴다. 그 후로 2시간 30분. 아빠는 아빠..

day 2017.08.25

20170801 꿈

오랜만에 예전 교회에 갔다. 오빠 일 이후에 신경이 쓰여서 한번 가본 터였다. 때마침 여름수련회 시즌이라 그걸 참여하면 되지 싶었다. ​ 교회가 커서 중간에 권사실을 지나는데 엄마가 엄청 울고있어서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수련회 프로그램으로 무슨 예전 순교한 사람들의 증거를 찾으러 가야 했는데 조를 나누는 중에 소변이 너무 마려웠다. 유치부로 들어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눈을 못보는 장님이 앞을 지키고 있다. 수련회때 어른들이 유치부를 왔다갔다 하며 소란을 피울 수 있어서 앞에 담당자를 두었다 한다. 수고하시네요 하며 지나가는데 다시 소변이 마렵다. 아까 물을 많이 마셨나, 버스 타고 이동해야되는데, 하며 다시 화장실로 들어간다. 담당자가 또오시냐며 인사한다. 안보일텐데 내 인기척이 들렸나 보다 하고 ..

night 2017.08.01

20170727 꿈속의 이직

꿈. 다른 단체와 함께한 프로젝트를 마치고 뒷풀이하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그것이 나도 모르게 진행이 되어 이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지선씨 우리단체 와요 그냥,' 이라는 우리들끼리 흔하게 하는 말에 '아 그럽시다 ㅋㅋ.' 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이직이 한 달 남았다며 그 단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연중에 퇴직 한 달 남기고 사직서를 제출 하는 것도 심히 불편하거니와 딱히 가고싶은 단체도 아니다. 그런데 가야한단다. 나는 녹색연합에서 하고 싶은 일도 아직 있고 사람들도 좋아서 이직은 생각도 안했다. 제일 중요한건 안식년도 아직 못썼다. ㅠ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단체 내에 소문이 났다. 지선이가 복지 좋고 돈 많이 주는 곳으로 옮긴다고. 한..

night 2017.07.27

개체의 숙명적 한계

​ 목숨을 걸고 서로 사랑하는 인간관계를 생각해봅시다. 진실로 목마름이 없을까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외로워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은 개체가 지닌 숙명적 한계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완벽하게 그 대상을 알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개체는 또 정지상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각각 운동하며 변하는 것입니다. 결국 알았다 하는 것은 근사치에 불과한 것이며 환상이거나 오해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개념과 보편성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영원히 아는 것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늙음과 죽음과 이별을 선택한 일도 없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강의노트

and 2017.04.07

사랑의 범위와 질문들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발화되었다면 그 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너의 '예쁜 모습'을 사랑한다/와 너의 '나를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를 사랑한다/와 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사랑한다/를 넘어서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너의 '모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사랑에 다다르는 방법이긴 할까? 사랑은 가능할까?감정의/이해의 어느 단계서부터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걸까?

day 2017.03.28

세상에서 해내기 제일 어려운 일에 대해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는 일에서도 졸업했다. 이아고처럼 간교하게, 단 하루 사랑하더라도 온몸을 불태우는 사랑보다는 미지근하더라도 평생 이어지는 사랑이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그건 자기의 환각을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나의 너' 와 사랑에 빠질 게 아니라 '진짜 너' 와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 그건 조금 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어렵다. 정말 어렵다.김연수

and 201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