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4

20211220 이제 안 올 거야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다. 무엇을 마시고 있지는 않고, 카페인 듯하다. 이제는 익숙한 오빠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현실에서 만들어져 있던 관계성이 꿈에서도 이어진 듯, 처음 꿈에서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과 안타까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제 본 사람을 내일도 볼 것처럼,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느릿느릿 주고받는 대화 속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확실하게 귀에 들려온 말, 나 이제 안 올 거야, 어? 왜? 이제 충분한 것 같아, 응 안와도 될 것 같다. 어? 그래, 뭐 오빠 선택이니까, 그럼 같이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핸드폰을 꺼내 든다. 제트플립. 셀카 찍기에는 제격이다. 화면에 잡히는 우리들. 찰칵, 찍힌 사진에는 나만 있다. 몇 번을 더 찍어도 마찬가지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

night 2022.01.06

20210919

1. 선물로 알리오 올리오 밀키트를 받았다. 사무실에 가서 점심으로 먹으려고 꺼내보니 양이 꽤 많다. 절반만 데우고 나머지는 다시 포장해둔다. 먹는 와중에 옆의 동료가 일 끝나고 한 잔 하자며 제안한다. 가고 싶다는 곳은 이탈리안 비스트로. 둘이만 가길 원하는 걸 보니 저녁 양이 많아질 것 같다. 먹던 파스타도 양이 많은데.. 살짝 고민하다가 먹던 파스타는 그만 먹기로 하고 포장하기로 한다. 잠시 화면이 전환되어 저녁을 요청한 동료가 아닌 다른 동료가 보인다. 그릇의 파스타가 여전히 많아 그에게 준다. 맛있게 한 입 먹는다. 그릇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보니 포장되어있던 파스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함께 익혔다가 포장하려고 그릇에 다 쏟아부은 것인데, 그걸 까먹고 그릇의 파스타가 여전히 양이 많으니 동료..

night 2021.09.19

20210523 배 안에서

1. 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배 안에 큰 객실이 많이 있고 객실 안에 각자의 침대가 있다. 배는 나무로 지어져 나무색을 띄는데 어두운 빛의 기름칠을 한 바람에 꽤 어둡다. 각각의 침대는 천장으로부터 길게 드리운 두꺼운 짙은 녹색 천으로 인해 사생활을 그런대로 보호해준다. 침대 커튼을 모두 치면 안에는 빛이 없어 완전한 어둠이다. 2.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 왜 탔는지도 사실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한다. 방주에 탔던 동물들은 방주에 타기 위해 몸을 작게 만들었단다. 오랜 기간의 대홍수가 끝나고 나서 동물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최대한 많은 먹이를 엄청난 속도로 먹어대는 것이었고, 이유는 자신이 원래 어느정도로 큰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고. 방주에서 태..

night 2021.05.23

20210510 스위스 여행

방가와 함께 스위스 여행 중이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위스라는 정보만 알고 있다. 설원을 걷다 발견한 집. 집은 아니고 어떤 갤러리? 체험관? 그런 곳.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금발에 덩치가 푸근한 언니들이 맞이해준다. 이 곳은 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만든 곳. 지적장애를 가진 한 사람을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다락에 가두고 평생 집안 노동을 시켰던 장소다. 이 체험관에서는 그가 과거 집 문을 열고 자신의 다락방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코스를 그대로 밟아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가 살았던 역사가 삽화와 함께 잘 재현되어있다. 찬찬히 읽는다. 들어가 보자. 그가 말한다. 나는 좀 귀찮은 마음이 들지만 따르기로 한다. 이런 곳에 오면 해보는 것도 좋다. 현관에 신..

night 2021.05.10

20210416 도쿄공항

도쿄로 여행을 갔다. 마지막 날. 우리는 패키지여행, 소니 여행사다, 을 갔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시 도쿄 공항으로 가야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로비에 모이니 가이드가 현금봉투를 나누어준다. 방가는 책임감이 발동했는지 여행사 표시 엑스배너들을 정리하고 있다. 모인 여행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버스로 이동한다. 주영이가 날 배웅하러 나와주었다. 나는 저 멀리에서 엑스배너를 옮기는 방가를 손짓으로 부른다. 방가가 오는 동안 주영이와 급하게 이야기 나눈다. 요즘 일본에서는 옛날 카세트 플레이어가 다시 유행이야, 어 한국에서도 지금 그런 거 같은데, 이따가 소니에 들릴 텐데 그때 그냥 그거 사, 소니에 왜 들려? 순간 가이드가 우리에게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거둔 채 외친다. - 나누어드린 현금봉투는 공항에 들..

night 2021.04.16

숨이 턱

'회원님을 위한 추천' 슥 슥 넘겨버리면 그만인 계정들이 즐비한 목록. 가끔 그 이전엔 알았으나 지금은 몰라도 되는 이들이 뜰 때 근황을 살필 겸 들어가 보기도 하는 그. 오늘은 달랐다. 차마 넘겨버릴 수 없던 이름. 들어가보니 바로 전 날까지도 맛있는 회 사진을 올려놓았네. 아래 댓글엔 추모의 댓글이 가득하다. 죽어서도 세상을 뜨지 못하는 영혼들처럼, 인스타 속 오빠는 건재하다. 덕분에 내 옅어진 그리움도 단숨에 차오른다.

day 2021.03.23

퇴근의 즐거움

사무실 뒤로 산을 넘는다. 사람 없는 곳에서는 마스크 내리고 크게 숨도 쉬며 큰 보폭으로 걸어 한 시간이면 시장. 시금치 한단과 청양고추 한 줌을 사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 담아주세요, 하며 말을 섞고 또 한참을 걸어 계곡이다. 근방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맡겨놓은 와인 두 병을 받아서는 다시 걷는다. 계곡을 올라 성곽을 지나 20분을 더 걸어 집. 쌀국수 면을 삶는다. 동시에 시금치와 청양고추, 마늘과 파를 기름에 볶는다. 잘 볶아질 즈음 면도 알맞게 익는다. 간장과 소금 후추를 넣고 더 볶아주면 맛있는 볶음면 완성. 빨리 먹으면 안 된다. 평소보다 느릿하게. 종일의 피로를 해소시켜주는 아주 확실한 움직임.

day 2021.01.27

20201128 지옥 다녀옴

어떤 곳에 방가와 함께 도착했다. 둘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 어느 중간에 사고가 난 모양이다. 어떤 로비 같은 곳이 있고, 거기서 안내를 받았다. 언어로 안내를 받은 건 아니었고 그냥 느낌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이 곳은 지옥이고, 우리는 죽었다. 죽은 자들 중 지옥에 오게 된 자들은 이 곳에서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죽기 바로 직전의 옷차림과 그때까지의 얼굴과 몸 상태가 앞으로 쭉 이어진다. (꿈을 깨서는 아, 항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해야겠군 생각함.) 함께 수업도 들어야 하고 돈을 버는 노동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고, 그곳의 사람들 그러니까 죽은 자들과의 교류도 끊임없이 진행해야 한다. 수업에 들어간다. 난 다행히 방가와 함께 죽은 덕분에 다닐 사람이 있다고 ..

night 2020.11.28

20200809 꿈에서 책 읽기

생전 오빠가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소설가 김영하가 책을 출판했다. 연애와 다양한 체험을 담은 것인데 오빠만 인터뷰 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오빠 부분이 처음부분에 나오고 소설 전반을 끌고가는 주제이기 때문에 꼭 읽어보고싶었다. 그 책을 시중에서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빠가 그 책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읽은 후에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아빠는 책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고, 그날 드디어 책을 다 읽은 아빠로부터 그것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키지도 못 할 거면서 이기지 못할 술을 마셔..’ 아빠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책을 건냈다. 책은 주황색표지, 표지는 비닐로 둘러 포장이 되어있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옆에 둔 채 잠이들어야 했다. 꿈이 시작되..

night 20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