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20201128 지옥 다녀옴

지삼이 2020. 11. 28. 15:31

어떤 곳에 방가와 함께 도착했다. 둘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 어느 중간에 사고가 난 모양이다. 어떤 로비 같은 곳이 있고, 거기서 안내를 받았다. 언어로 안내를 받은 건 아니었고 그냥 느낌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이 곳은 지옥이고, 우리는 죽었다. 죽은 자들 중 지옥에 오게 된 자들은 이 곳에서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죽기 바로 직전의 옷차림과 그때까지의 얼굴과 몸 상태가 앞으로 쭉 이어진다. (꿈을 깨서는 아, 항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해야겠군 생각함.) 함께 수업도 들어야 하고 돈을 버는 노동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고, 그곳의 사람들 그러니까 죽은 자들과의 교류도 끊임없이 진행해야 한다. 

수업에 들어간다. 난 다행히 방가와 함께 죽은 덕분에 다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전에 다니던 교회의 친구들이다 갓 왔는지(?)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서로를 확인한다.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왠지 최근에 교회에서 단체로 어딘가를 가다가 함께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여기는 지옥이라는데 아는 사람도 보이고 막연히 생각했던 불지옥 같은 것도 없고 의아하긴 하다. 처음 온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것에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하면서는 오히려 재밌어한다.

수업이 끝난 후 복도를 천천히 걸어 다음 시간인 소규모 교실로 들어간다. 이제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생겨서 그런건지 서로 섞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한 여자가 나에게 온다. 꽃으로 만든 큰 액자를 선물로 준다. 꽃의 이름은 알펠펜 알핀핀이란다.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어떤 사이비 종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꽃이다. 꽃의 가장자리 부분만 색이 있고 나머지는 하얀색이어서 신비한 느낌이다. 꽃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교실 풍경을 살피는데 저쪽 한 사람은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다닌다. 이 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고, 자기소개를 계속해야 하니 아예 자기 홍보물을 인쇄해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주듯 자기소개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다니는 것.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저렇게까지 자기를 알려야 하나? 아마 저쪽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자기 홍보에 엄청 신경을 쓰던 사람이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복도로 나온다. 

외형도 변하지 않고, 사고당하기 직전의 옷차림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꾸밀 수도 있다. 꾸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각. 마음을 먹으면 그 순간 복장이 바뀐다. 하지만 결국 기본값은 죽기 직전의 차림. 먹고 살기 위해 일 할 필요도 없고 지옥에서 제공하는 수업만 들으며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 된다. 그렇다면 여기가 왜 지옥이지? 이 삶의 끝이 없다는 것. 평안하고 새로운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 이 생활을 영원히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이 없는 지겨운 삶이 끝없이 되풀이될 거라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고.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어찌되었든 끝이 주어지는 것이니까 좋은 (천국?) 것이고, 끝이 없는 그 공간이 바로 끔찍한 지옥이라는 생각이 막 들어오면서 꿈에서 스륵 나오는 바람에 한동안 멍하다가 잠을 깼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instagram.com/p/CIGmv2ppelq/ (arcade fir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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