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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너무 빨리 만났다

지삼이 2025. 2. 12. 12:47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있다. 십여년 전에 나온 책을 이제 읽는다. 처음 책이 발행 되었던 2012년, 책에 매료된 한 선배에 의해 사무실 화장실 문에는 책의 몇 문장이 발췌되어 영원히 박제되어있다. 크고 작은 일을 보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무조건 그 문장을 한 번은 훑는 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지금 한 문장도 기억이 안나니. 마찬가지로 2010년부터 거의 우리 단체 제2캠퍼스였던 그 술집, 주인에게 쫓겨나 더이상 운영하지 않던 혜화동의 그 술집 화장실에 붙어있던 그 시절의 글귀들은 선명히 기억 나는데. 술을 한 번 더 마시면 난 개다. 오늘 난 개다, 뭐 이런 거라든가. 안에 들어온 자는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뭐 이런 거. 아무튼, 지금 읽는 이 책은 어느 시절에 갖다 놓아도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기운으로 나를 위로 해주고 있다. 왜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비통하게 해서... 그런데 이게 민주주의의 기본값이란 말이야? 

이 책의 역자는 김찬호 선생님이다. 김찬호 선생님은 2012년 쯤 만난 기억이 있다. 무려 내가(무지랭이) 섭외하여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당시 인문학 강좌를 준비하면서 참 많은 선생님들을 모셨다. 그 분들이 머릿 속에 스륵 지나간다. 당시 이 책을 읽었다면 역자를 바로 옆에 두고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너무 빨리 만난 자들이 많다. 대학생 시절의 교수님들이라거나, 스쳐 지나갔던 지적 생명체들, 이 책의 저자, 현재 만나고 있는 통역사 선생님들도 그렇고. 소속이 주는 힘으로 내 알맹이보다 너 큰(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 테다.내가 너무 빨리 만났다는 것을 몰랐고, 그래서 십수년이 지나 아쉬움만 가득한 거지 뭐. 그렇게 오늘의 난, 아! 내가 요만큼만 더 나은 상태였으면! 더 풍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눈높이에서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 이러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끄집어내어 현재의 나를 탓하고 있다.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환경이라며 만족하고 살았는데, 사실은 더 만족할 꺼리가 도처에 널려있었던 그 천국을 눈 가리고 그저 웃으며 지나온 나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의 흐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안다구요) 천천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 비교하자. 생각의 거품들은 여기에 덜어내고 오늘을 살려 한다. 그것이 최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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