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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 다음 7층

지삼이 2022. 4. 15. 11:13

퇴근 후 늦은 세미나까지 마치고 돌아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문이 열리고 한 발, 몸을 밀어 넣는 중 한 어르신이 급하게 들어온다. 꾸벅 인사를 하고 진작부터 보고 있던 인스타그램 피드에 시선을 고정한다. 어르신도 눈인사를 마치고는 바로 핸드폰에 시선 고정. 흡사 거북이 두 마리 같다.

- 7 층
- 9 층
내장되어있는 경쾌한 여자의 목소리가 내가 누른 층과 그가 내린 층을 차례로 읊는다. 9층 사시나 보네... 무심히 쓱 쓱 피드를 올리다가 "띵!" 문이 열리고, 여전히 폰에 얼굴을 묻은채 천천히 내려 익숙하게 우회전 한다.

문앞에 도착해서야 고개를 들었는데, 902호?? 뭐지? 왜지? 뭐지? 잠깐의 혼돈과 깨달음. 다시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가 다급하게 말한다. 저기요! 여기 9층인데요! 아, 그는 짧은 비명과 함께 급히 엘레베이터를 나서고 나는 머쓱해하며 다시 7층을 누른다. 아까 누른 거 같은데 이상하다.

이날은 회원들에게 보낼 뉴스레터를 작성한 날이었다. '로그아웃하는 날'을 정하자며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편지였다. 지하철 계단에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걸어 다니는 위험한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진심이었던 거 같은데, 폰에서 그만 얼굴을 들고 세상을 보자는 그 말은.

오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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