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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두고 나온 아침

지삼이 2014. 10. 29. 11:08

한동안 음악을 듣지 못 했다. 몇달간 매일같이 귀를 울리던 데시벨 높은 음악에 시달린 까닭이다. 


나는 '음악의 맥락과 계보'는 모를지라도 무한한 탐구정신과 나만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가 나왔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시디를 구입하고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와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가 없던 탓이다.) 1번 트랙을 플레이 했을때의 쾌감은 워낙 예전 기억이니 차치하도록 하자. 지금은 결국 음원시대다. 매일밤 잠을 뒤로 미루고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엄치던 '소리바다' 시절부터 '추천클립'이라는 신세계가 펼쳐지는 현재의 유튜브까지, 어디선가 고군분투하며 음악을 창조해내는 그들은 나에게 금광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이어폰이 고장나면 그 길로 레코드샵에 달려가거나 애플스토어에 달려갔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랬다. 



그렇게 유난을 떨었던 나는 그동안 음악을 듣지 못했고, 다행히 다시 귀는 충전이 되어 요즘은 꽤 열심히 이어폰을 꼽고 걸어다니고 있다. 그러던 오늘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 불과 집에서 50m도 멀어지지 않은 시점(그 즈음 이어폰을 꼽는다.) 에서 깨달았다. 그런데 발걸음은 계속 앞을 향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두고나온 오늘 아침,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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