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3

사랑의 범위와 질문들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발화되었다면 그 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너의 '예쁜 모습'을 사랑한다/와 너의 '나를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를 사랑한다/와 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사랑한다/를 넘어서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너의 '모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사랑에 다다르는 방법이긴 할까? 사랑은 가능할까?감정의/이해의 어느 단계서부터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걸까?

day 2017.03.28

봄눈

눈이 많이 내려 우산을 쓰고 걸었다. 우산을 든 손이 전혀 시리지 않았다. 봄눈이었다. 콤프레샤 무거울텐데. 계획범죄였을까 생계형이었을까. 우리는 느리고 더디지만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언어를 맞추는 일인가보다. 나같지 않은 너와 너같지 않은 내가 나누는 '우리'의 이야기. 맞춰진 만큼 더 큰 즐거움과 행복과 안정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day 2017.02.22

외할머니 안녕

우리 외할머니는 욕을 참 잘 하셨다. 친절하지도 않으셨고 화도 많이 내셨다. 키는 작았지만 몸집도 크셨다. 그래도 항상 외갓집에 가면 식구들이 웃는 소리가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시끌벅적. 외할머니는 보신탕을 잘 만드셨다. 매년 여름이 되면 외삼촌은 개를 사오고 외할머니는 그 개를 가지고 보신탕을 끓이셨다. 처음엔 수육을 삶아서 먹다가 나중에는 탕을 끓이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남은 건 싸와서 며칠을 더 먹었더랬다. 또 외할머니는 술을 잘 만드셨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셨기 때문에 외할머니의 술을 마셔볼 기회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중학생때 돌아가셨다. 아마 14살 무렵이었던 거 같다. 외할머니는 상실감이 너무 크셨는지 매일 외할아버지의 무덤에 다녀오셨..

day 2016.11.15

2016.11.12

100만명이 모였다. '선두'로 일컬어지는 경복궁쪽은 부러 가지 않았다. 선두가 아닌 곳은 즐거움과 '박근혜 퇴진'의 외침이 가득했다. 많은 자들이 모여서 앞의 사회자와 발언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집회, 할말을 입밖에 내고 싶은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중앙집중(ㅋ)식 집회가 참 불편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서서 한명의 몫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루함을 뚫고 가곤 했다. 어제는 달랐다. 그동안의 집회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삼삼오오 그들만의 크고 작은 집회를 기획했고 나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과의 집회를 함께했다. 북을 치고 춤을 추고, 주변의 시민들은 기꺼이 함께 했다. 누구말마따나 Grand haya Festival이었다. ​​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저..

day 201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