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20220223 방문자들

지삼이 2022. 2. 24. 11:37

대학 동기 M과 그녀의 아들, 지금은 휴직중인 데면데면한 사이의 동료 S, 함께 춤을 추던 B와 E, 그의 딸과 딸의 보모, 함께 술을 마실때 즐겁고 편한 L까지 서로의 공통점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앉았다. 당연하게 묘한 어색함이 흐르고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을 함께 먹는다. 

내가 사는 집은 정원이 넓은 2층 주택. 1층에는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에는 방이 몇 개 있다. 4가족이었지만 형제의 죽음으로 현재는 3명이 거주하고 있다. 큰 집이고, 화목한 가정인지 곳곳에 가족사진이 붙어있는데 이전의 따뜻함은 사라졌고 황량한 분위기다. 애매한 모임인 탓에 아무 이야기를 서로 던진다. 의미 없이 주고 받는 말 속의 어떤 뾰족함이 M을 찔렀는지 갑자기 오열한다. 졸업 후 꽤 이른 나이에 상당한 재력가와 결혼한 M은 당당해 보이는 겉과 달리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옆의 아들은 어쩔 줄 모르며 엄마 옆을 지킨다. M의 울음에 하나 둘 이 곳을 뜨고 싶어진 모양, S가 먼저 잘 먹었다며 일어난다. M도 일어나며 커피 한 잔만 달라고 한다. 집까지 가는 길이 멀어 가는 중에 목이 마를 것을 대비 한다고. 나는 커피를 내려주려는데 M의 텀블러는 2리터짜리다. 말이 2리터지 안에 진공기능까지 있어서 예전 정수기에 꽂아 쓰던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 텀블러라고 하기보다는 드럼통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커피를 잔뜩 내려 담아주는데 여전히 빈공간이 남았는지 끝까지 물을 채워달라기에 그렇게 한다. 끌차도 가져왔다. 텀블러를 끌차에 잘 동여맨다. 텀블러에는 바랜 내 이름이 보인다. 나는 쓴 기억이 없는데. 

L도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나는 L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다가가서는, 몇시까지 있을 수 있는지 묻는다. 3~4시까진 괜찮단다. 시계를 보니 2시. L이 3~4시까지 있을 수 있으니 그때 같이 나가라, 그렇게 울다가 가면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럴까. M은 마음이 풀린 눈치지만 L은 당황한다. M과 있고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L은, 언니 저 집앞 산책 잠깐 하고 올게요, 라며 집을 나선다.

B와 E가족도 일어선다. 그의 딸은 아직 너무 어려서 멀리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보모가 함께 해야 하는데, 오늘은 아이를 보모에게 맡기고 여기까지 온 김에 을왕리에 가서 조개구이 한 판 먹고 집에 간단다. 아이가 작아도 너무 작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이불에 온 몸을 감싸고 있다. 보모는 아이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작고 영롱한 불꽃을 하나씩 틔워준다. 그렇게 이 가족은 떠나고, 나는 피곤했는지 잠에 든다. 잠에서 깨니 모두 사라졌고 L이 남긴 쪽지에는 시가 적혀있다. 

신문을 펼치니 배열이 아아아아아산만해!
그리고 그안엔
매끈한 국가대표선수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더이다
영 읽히질 않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일년만에 재회한 이 곳엔
이들의 사랑이 담겨있는 사진이 너무 많아 잠시 마음이 (        )
제이이이별관의
제이이이이이이별관이라는 뜻의 이대가
진짜 이름을 만나 이대가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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