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20231124 구조된 동물들로 만든 책

지삼이 2023. 11. 25. 10:16

어떤 이유로 엄마와 함께 스페인에 단체여행, 혹은 연수를 가게 된다. 어느 마을 장터 바닥에서 카메라를 줍는다. 그 카메라로 이 곳 저 곳을 찍고 다니며 여행이 시작 된다. 동물구조단체를 만나고 그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마을 창고 같은 곳을 들어간다. 창고는 고통받는 길고양이 외 공장에서 실험실에서 학대받다 구조된 다른 짐승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회복능력이 없는 동물들은 책으로 묶어놓았는데 그 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파일철을 해 놓듯 거대한 책 (세로가 1미터가 넘었고 가로는 1미터가 조금 안 된다) 의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의 다리 하나를 클립으로 세게 고정해놓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두께가 고작 2cm정도가 될 때까지 납작해진 동물들은 다리 하나가 고정된 채 자리하게 되는데, 다리 하나가 고정된 각각의 동물들이 자유롭게 늘어져있는 것이 아닌 책의 사이즈에 맞추어 마치 편육처럼, 돼지머리를 누른 후 잘라 판매하는 것처럼 반듯하게 한 페이지를 구성하고 있다. 페이지 당 6-7마리가 자리한다. 눈을 뜨고 있는 애들도 있고, 죽은 애들도 있고, 약한 소리로 야옹야옹 하는 애들도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데 그 무게 때문에 풀썩 하고 페이지가 넘어가니 안의 동물들은 그냥 죽어갈 뿐. 마지막장은 아주 두꺼운 책 커버다. 유난히 무겁게 떨어지며 페이지를 닫는다. 이런 책이 십수권이나 된다. 심지어 거대한 책은 책꽂이에 제목이 붙여져 (카테고리화 되어) 반듯하게 진열된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죽을 애들을 그래도 한동안 구조해내서 세상에 보여주려는 의미라도 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다) 여기서 건강해져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애들도 있다. 나는 믿지 않는다. 모든 동물들이 발끝이 찝힌 채로 책이 되어 있는 걸. 더군다나 국가의 지원을 받는 단체다. 면피용 구조임이 확실해 보이긴 하는데,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보인다.

4시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12시쯤 시내를 떠나야 한다. 마을 창고를 나오며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주친, 아직 살아있는 납작한 고양이. 네모 반듯하게 책이 된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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