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4

20240404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어디가 아팠나, 병원에서 진찰을 마치고 막 병원 1층 로비를 지날 때였다. 전화가 왔다. 익숙한 번호와 이름, 오빤데. 뭐야, 어떻게 전화했어?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했다. 들려오는 그리운 목소리. 뭘 어떻게 해 그냥 하니까 되는데. 그럼 나도 전화 해도 돼? 아빠한테 말해도 되나? 나의 질문에 그는 생각 날 때 하라고, 왜 이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언젠가부터 되는 것 같다고, 아빠한테는 말 하지 말라고, 너무 당황하시고 힘들어하실 거라고 했다. 한창 꿈에서 주파수가 맞아 만나 나누던 이야기를 더듬어 근황을 나누었다. - 전에는 문지기 같은거 했었잖아, 영풍문고에서 만났을 때 그거 한다며. 요즘엔 무슨 일 해? - 요즘엔 스키장에서 눈 관리 해. - 뭐야, 일이 바뀌기도 해? - 여기가 그..

night 2024.04.05

20231121 시간여행, 종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유리문을 두번 똑 똑 두드린 후 양 손을 유리문에 기대어 가만히 누르고 이동하고 싶은 시대와 장소를 생각하면 그 곳으로 가게 되는 것. 하지만 이동할 시간에 살고 있는 나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시간여행중인 미래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또한 매우 짧은 시간동안만 있을 수 있으며 다시 현재로 돌아오려면 같은 장소에서 이동해야 하므로 멀리 가서는 안 된다.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그 곳에 갇힌다. 아무튼, 이동한다. 도착한 곳은 종로, 광화문 인근 어느 건물 1층 버스 주차장이다. 지금보다 공기가 좋지 않은것 같다. 황사가 심하다. 같이 과거로 넘어온 친구는 부모님을 뵙고 빨리 온다며 지하철을 타러 뛰어간다. (나는 내 과거의 모습을 알고 있으니 ..

night 2023.11.25

20231124 구조된 동물들로 만든 책

어떤 이유로 엄마와 함께 스페인에 단체여행, 혹은 연수를 가게 된다. 어느 마을 장터 바닥에서 카메라를 줍는다. 그 카메라로 이 곳 저 곳을 찍고 다니며 여행이 시작 된다. 동물구조단체를 만나고 그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마을 창고 같은 곳을 들어간다. 창고는 고통받는 길고양이 외 공장에서 실험실에서 학대받다 구조된 다른 짐승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회복능력이 없는 동물들은 책으로 묶어놓았는데 그 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파일철을 해 놓듯 거대한 책 (세로가 1미터가 넘었고 가로는 1미터가 조금 안 된다) 의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의 다리 하나를 클립으로 세게 고정해놓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두께가 고작 2cm정도가 될 때까지 납작해진 동물들은 다리 하나가 고정된 채 자리하게 되는..

night 2023.11.25

20220512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해 본 꿈

클로바 앱을 사용하여 잠이 덜 깬 상태로 꿈을 보이는 대로 녹음해 봄. 나중에 보니 읽을 수록 무섭다. - 엄마가 나를 결혼시키려고 결혼을 시키려고 하는데 부잣집에 결혼을 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면 이 친구랑 해야겠다 하고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고 나를 굉장히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에요. 근데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고 엄마가 어디서 굉장한 부잣집 아들을 어떻게 알게 돼서 엄마도 그 아들을 본 적 없고 그 집안을 알게 돼서 나를 그 집에 결혼을 시키고 그 집을 살게 하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그 집에 종 비슷한 것이 되려는 것 같습니다. 속셈은 알 수 없습니다. 네 어째서인지 그 엄마의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이 속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그냥..

night 2022.05.12

방황하는 눈동자

큰 무대의 통역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용기가 아니라 오만이었다는 것. 전날부터의 긴장감은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드라마 한 편을 보고 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대를 보면서 혼자 생각할 때는 잘만 정리되던 것이 무대에 나가니 들리지도 않고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무대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함께 한 분들은 '용기가 좋았다, 처음인데 잘 했다' 라며 위로도 해주시고 '초조하고 성급한게 다 보인다, 머리가 굴러가는 건 보이는데 손은 가만히 있더라,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괜찮다'며 평가와 조언도 해주셨다. 위로에 위안을 얻을 필요는 없다. 내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것은 그냥 곁가지가 ..

day 2022.05.01

9층 다음 7층

퇴근 후 늦은 세미나까지 마치고 돌아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문이 열리고 한 발, 몸을 밀어 넣는 중 한 어르신이 급하게 들어온다. 꾸벅 인사를 하고 진작부터 보고 있던 인스타그램 피드에 시선을 고정한다. 어르신도 눈인사를 마치고는 바로 핸드폰에 시선 고정. 흡사 거북이 두 마리 같다. - 7 층 - 9 층 내장되어있는 경쾌한 여자의 목소리가 내가 누른 층과 그가 내린 층을 차례로 읊는다. 9층 사시나 보네... 무심히 쓱 쓱 피드를 올리다가 "띵!" 문이 열리고, 여전히 폰에 얼굴을 묻은채 천천히 내려 익숙하게 우회전 한다. 문앞에 도착해서야 고개를 들었는데, 902호?? 뭐지? 왜지? 뭐지? 잠깐의 혼돈과 깨달음. 다시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가 다급하게 말한다. 저기요! 여기 9층인데요! 아, 그는 ..

day 2022.04.15

20220223 방문자들

대학 동기 M과 그녀의 아들, 지금은 휴직중인 데면데면한 사이의 동료 S, 함께 춤을 추던 B와 E, 그의 딸과 딸의 보모, 함께 술을 마실때 즐겁고 편한 L까지 서로의 공통점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앉았다. 당연하게 묘한 어색함이 흐르고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을 함께 먹는다. 내가 사는 집은 정원이 넓은 2층 주택. 1층에는 부엌과 거실이 있고 2층에는 방이 몇 개 있다. 4가족이었지만 형제의 죽음으로 현재는 3명이 거주하고 있다. 큰 집이고, 화목한 가정인지 곳곳에 가족사진이 붙어있는데 이전의 따뜻함은 사라졌고 황량한 분위기다. 애매한 모임인 탓에 아무 이야기를 서로 던진다. 의미 없이 주고 받는 말 속의 어떤 뾰족함이 M을 찔렀는지 갑자기 오열한다. 졸업 후 꽤 이른 나이에 상당..

night 2022.02.24